취미생활/해외축구 Liverpool FC

제라드는 리버풀을 거의 떠날 뻔했다? 드라마틱한 유턴과 무리뉴의 고백

미스캡틴 2021. 7. 22. 14:27

스티븐 제라드의 소년 시절부터 선수 시절 내내 계속된 리버풀을 향한 충성심은 그가 리버풀 레전드가 되기까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6년 전, 그는 그것을 모두 던져버릴 뻔했었다(He came perilously close to throwing it all away).

 



리버풀 클럽이 존재하는 한,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서 스티븐 조지 제라드의 업적이 전해질 것이다.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이것은 끊임없이 계속될 논쟁으로 절대 의견이 일치될 수 없을 것이다.

17년 가까이 안필드에서 붉은색 셔츠를 입고 뛰어난 선수생활 이어간 그를 지켜보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영광스러운 일이며, 그 기간 동안 Huyton에서 자란 소년은 자연스럽게 캡틴으로서 리버풀의 암흑기 동안 클럽을 이끌었고 가장 빛나는 순간(most meteoric heights)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제라드 울리에 시절의 트레블, 이스탄불의 기적, FA컵 결승의 주역...그의 인격적인 장점과 더불어 타고난(innate) 축구 기술과 신체적 기량(prowess)으로 리버풀의 활약에 피와 뼈, 힘줄(sinew)을 제공했던 시대에 대해서는 너무 많아서 다 언급할 수가 없을 정도다.(too many to mention).

그가 리버풀 역사상 (리버풀이 아닌 동시대 선수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캡틴으로 추앙받는 것은 필드 위에서의 활약뿐만 아니라 사실상 유스 시절부터 커리어 내내 리버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는 것도 있다. 리버풀의 기준으로는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시대지만, 그가 레전드로서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머지사이드를 떠날 수밖에 없다(they had no option but to leave Merseyside)고 생각했던 재능 있는 어린 스카우스(scouse: 리버풀 사람)들의 예를 봐도, 오직 스탠리 파크(리버풀에 있는 큰 공원) 너머를 보기만 한 원클럽맨이라는 타이틀은 현대 축구에서 굉장히 드물다(rarer and rarer).

커리어 내내 그를 영입하고자 하는 유럽의 톱 클럽들이 많았지만, 제라드는 반? 은퇴(semi-retiring) 겸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자신의 전성기 때도 안필드에 남았다. 최고의 시즌에 완벽한 결말이 준비된 것 같았던 때 가장 갈망했던 리그 타이틀이 그를 잔인하게 비켜갔지만(even if the league title one he may have craved the most cruelly evaded him), 공평하게도(in fairness) 대부분의 선수들이 부러워할 만큼 많은 메달을 쌓아 올렸다. 그가 태어난 도시와 마음속에 있는 클럽에 대한 충성심은 리버풀을 향한 그의 열정과 헌신을 대변하며 세대를 건너 대대로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16년 전 이번 주, 제라드가 이스탄불에서 모든 역경을 딛고(against all the odds in Istanbul) 리버풀을 5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몇 주 뒤에 공개적으로 안필드를 떠날 의사를 표명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던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야기는 정말 달라졌을 것이다.

 



2005년 여름, 25살의 리버풀 선수는 이미 캡틴으로서 자리를 잡았고(the 25-year-old Scouser had already established himself as Liverpool captain) 잉글랜드 국가대표의 핵심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재능 있는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였다.

Whiston Juniors에서 뛰면서 8살에 리버풀 스카우트에 의해 발탁되어 다음해 리버풀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키가 작다는 우려가 있었고(15살에 마이클 오웬과 같은 크기였다) 그 후 급성장(growth spurt)하여 부상 문제도 있었지만 1998년 11월, 18살에 블랙번 로버스와의 홈경기에서 벤치에서 나와 리버풀 1군 데뷔를 이뤄냈다.

시즌 마지막까지 그는 리버풀의 숙적(old enemy)을 상대로 교체로 출전해 볼을 라인 밖으로 걷어내면서 5년 만의 첫승을 도왔고, 셰필드 웬즈데이를 상대로 (리버풀에서 기록한 186골 중) 기록적인 첫 골을 터뜨리며 두 번이나 머지사이드 더비의 영웅이 되었다. 이를 본 리버풀 에코는 제라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이로운 재능이다. 노비 스타일스의 터프함과 그레엄 수네스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다. 그는 드리블로 세 명의 수비수를 제치며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1999년 12월 잉글랜드의 유로 2000 스쿼드에 들면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고, 탁월하고 급성장하는 재능(prodigious and burgeoning talent)과 더불어 울리에 체제에서 사이드 윙어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유일무이한 트레블과 생애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며, 그의 두 번째 시즌에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하여 동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안필드 타이틀을 향한 갈망이 20년 째로 접어들면서 19번째 리그 우승을 위한 맹공격의 중간 기착지였어야 했지만, 2001년 10월 감독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 질환으로 결국 상승세가 꺾였다. 이듬해 봄, 01-02 우승팀인 아스날에 이어 2위로 시즌을 마감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감독이 덕아웃으로 돌아왔고 2004년 5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지만, 울리에는 안필드에 작별인사를 남기고 떠났고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난 10월 23세의 나이로 리버풀의 주장으로 임명된 제라드는 그의 미래에 대한 추측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그 해 여름, 유럽 챔피언십을 위해 잉글랜드 대표팀과 포르투갈로 향했다. 클럽은 재빨리 울리에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움직였고, 라리가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양강체제를 무너뜨리고 발렌시아를 2번 우승시킨 라파 베니테즈를 데려왔다. 당시 리버풀은 챔피언인 아스날에 30점이나 뒤져 있었기에 힘든 19번째 타이틀은 그 어느 때보다 멀어 보였다.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지 1년, UEFA컵과 유러피언컵을 연달아 우승한 밥 페이즐리 감독의 아성에 댈만한 호세 무리뉴 감독을 FC포르투로부터 영입하며 그들의 의도를 표명하고, 크레스포, 후안 베론, 아드리안 무투, 마켈렐레, 데미안 더프 등 선수 영입에 £110m(1억 1천만 파운드)를 투자하며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다. 첼시는 재정적인 지원으로 그들의 길을 일류로 바꾸려 했고 신흥 재벌 클럽으로서 다시 성공을 거둘 것이 명확했다.

 



베니테즈는 아직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새로운 캡틴과 함께 포르투갈로 떠났다. 스타 스트라이커인 마이클 오웬의 계약이 1년밖에 남지 않았고 새 시즌 전에 안필드를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라드와의 첫 만남,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라드의 어머니와의 만남은 그의 불안감을 덜어주진 못했다.

베니테즈가 나중에 자서전에 밝혔지만, 그는 전임자인 제라드 울리에와 제라드의 어머니인 줄리 안과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울리에가 서로 소개를 해줬다고 한다.

"라파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며 인사하고 나서 바로 굉장히 직설적인 질문을 했대요. '스티븐이 돈을 좋아하나요?' 일반적인 인사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를 제외하고는 그게 라파가 어머니에게 꺼낸 첫마디였어요. 저는 어머니와 굉장히 사이가 좋아서 리버풀의 새로운 감독이 저를 만나려고 택시에 올라타기도 전에 모든 걸 들었죠."

그것은 제라드와 베니테즈가 맺을 복잡한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암시였지만, 제라드는 후에 같이 일해 본 감독 중 적어도 전술적으로는 라파가 최고였다고 인정하게 된다.

 



무리뉴는 그의 새로운 캡틴(존 테리)에게 제라드가 남쪽(런던)으로 이동하도록 설득해보라고 했고, 존 테리는 몇 년 후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동안 이 자부심 강한 리버풀 선수가 스탬포드 브릿지로 이적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 떠봤다는 것을 인정했다(John Terry years later admitting he tested the water during the tournament to see if the fiercely-proud Scouser would be interested in moving to Stamford Bridge).

"스티비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고 리버풀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해왔어요. 무리뉴는 잉글랜드 선수들에게 관심이 있었어요. 우리에게 스티비와 조용히 이야기할 수 없겠냐고 물었고 그렇게 해줬죠. 스티비는 말 그대로 처음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마지막엔 좀 돌아섰어요."

그 해 여름에 첼시의 £20m(2천만 파운드) 비드를 거절했고 제라드는 프리시즌이 시작할 때 기자회견을 열어 당분간은 안필드에 머물 것이라고 했지만 클럽의 진행상황에 만족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경력에서 처음으로 이적을 고려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 해 12월 올림피아코스와의 결정적인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을 앞두고 그는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여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봐야겠죠." 그는 올림피아코스가 안필드를 방문하기 전날 말했다. 리버풀은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이겨야 했고 프리미어 리그는 이미 첼시에 15점 뒤쳐진 7위였다.

"저는 시즌이 끝날 무렵 25살이고, 최고 수준에서 뛸 수 있는 건 6~7년 정도 남았습니다. 그래서 빨리 반전이 일어났으면 좋겠네요(So hopefully the turnaround can happen quite sharpish). 저도 팬이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에요. 이 클럽에서 이기고 싶지만 전 시간이 많지 않죠. 클럽이 변화하고 우승팀이 되기 위해 3~4년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요. 지금 뭔가가 바뀌고 시즌이 끝나서 여름이 오면 다음 시즌엔 우승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 아직 포기하지 않았지만 순위를 보세요."

 



운명적이게도(the fates would have it) 제라드는 올림피아코스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몇 분을 남기고 자신의 가장 상징적인 인생골 중 하나로 득점을 올려 리버풀을 16강에 올려놨고 이스탄불에서 AC밀란과 결전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리버풀은 리그에서 챔피언(예상대로 첼시)보다 37점이나 뒤져 있었다. 머지사이드 이웃인 에버튼보다도 아래인 5위였기에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위해서는 무조건 이겨야 했고 제라드는 하프 타임에 기적적인 반격을 이끌었다.

정확한 헤딩으로 리버풀에게 3-1의 희미한 희망의 빛을 안겨줬고, 몇 분 뒤 박스 안을 향해 돌진하여 동점골로 이어진 페널티킥을 따냈다. 그는 리버풀이 승부차기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120분 넘게 3개의 포지션을 넘나들며 어마어마한 재능과 다재다능함을 보여줬다.

 



유러피언 컵을 들어 올린 2번째 리버풀 로컬 선수로서 자신과 전 세계 수백만 리버풀 팬들의 꿈을 실현시켰고, 승리의 황홀함과 감정의 여파 속에서 모든 팬들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을 전했다.

"이런 밤을 보내고 어떻게 리버풀을 떠나겠어요? 전 정말 행복합니다. 조만간 구단주,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지만 괜찮을 것 같아요."

새로운 계약서에 주장의 싸인은 형식적일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승리의 기쁨을 즐기기 위해 포상 휴가를 떠났다. 그러나 6월이 지나고(원래 루머는 비시즌에 더 열광적이다) 이적 루머가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the transfer romour mill began to whir again). 또다시 첼시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도 연결되었지만, 6월 16일 리버풀 단장 릭 패리는 주장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클럽을 위해서 스티븐을 지키고 그를 중심으로 우승팀을 구성하는 것보다 더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없습니다. 그가 남고 싶어 하는 한, 우리는 그를 지키고 싶습니다."

며칠 후에 베니테즈 또한 제라드가 자신의 계획의 중심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제라드의 어깨를 위한 스페셜 플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가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려주길 원해요. 저는 그를 파는 것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제라드를 중심으로 훌륭한 팀을 만들고 있고, 그가 역사상 가장 많은 타이틀을 가진 주장이 되길 원해요."

제라드는 자신의 발언에 매우 신중을 기했지만,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힌트를 내비쳤다. "공은 지금 리버풀 쪽 코트에 있어요. 우리는 새로운 계약이 대해 아직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저도 그 대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르겠네요."

리버풀은 리그 순위가 낮아서 자동 진출이 아니기 때문에 7월 중순 챔피언스리그 예선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라드와 다른 선수들은 결승전 이후 33일 만인 6월 27일에 프리 시즌 트레이닝에 복귀했고 상황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틀 뒤, 신혼여행 중이라 잠시 부재중이었던 제라드의 에이전트 스트런 마샬이 릭 패리와 대화를 시작했지만 스페인 일간지 AS가 제라드가 베니테즈에게 레알 마드리드에게서 온 제안이 "매우 유혹적"이라고 했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게재한 7월 1일에 문제의 첫 징후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선수 측에서는 대화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추측이 난무했던 주말이 지나자 마샬은 7월 4일 리버풀과 계약 협상은 실패했고 "다시 재개될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베니테즈는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네덜란드 국가대표 젠덴 영입을 발표하면서 제라드가 "영원히" 머물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며 반면에 패리는 (듣기로는 제라드와 데이비드 무어스 구단주가 만남을 가졌으며 주급 10만 파운드를 제안했다고 한다) "정말로 놀랐다"며 "우리가 수요일에 만났을 땐, 모든 게 좋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패리는 리버풀이 첼시로부터 받은 £32m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이후 같은 날에 폭탄이 터졌다. 제라드는 리버풀에 그는 평생 클럽을 위해 뛰었고 바로 몇 주 전 유럽의 영광도 찾아왔지만 이제 안필드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제가 내린 결정 중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 이후 진심으로 새로운 계약을 사인할 의사가 있었지만 지난 5~6주 간의 사건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클럽과 험담 배틀에(in a slagging match) 관계된 사람들을 제가 너무 존중해준 것 같네요."

제라드가 공식적으로 이적 요청을 할 때까지는 떠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 클럽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스티븐이 클럽을 떠나고 싶어서 연장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릭 페리 또한 '클럽은 어느 개인보다 커야 한다. 축구에는 기복이 있기 마련'이라며 현 상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제라드가 떠나고 싶다고 했고, 거의 결론이 나온 것 같네요. 지난여름에 같이 이야기를 나눴지만 성공의 부족에 대한 그의 좌절감을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좀 더 버텨서 우리가 무엇을 이루는지 확인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꽤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클럽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데 이보다 더 좋은 징조(챔피언스리그 우승)가 있을까요? 그는 성공을 원했고 아마도(presumably) 다른 곳에서 그걸 얻을 수 있다고 느꼈겠지만,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증명하는 게 우리의 일이죠. 전 그에게 '이스탄불의 기적과 팬들을 생각하라'고 했어요. 선택의 폭이 큰 시장이기 때문에 스티비를 위해 받는 돈을 신중히 살펴보고, 리버풀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만드는 데 사용할 겁니다."

이 소식은 축구계와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아니나 다를까 몇몇 관종이 텔레비전 카메라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안필드 밖에서 제라드의 유니폼을 불태우기도 했던 리버풀 팬층에게는 더욱 충격이었다(nowhere more so than among the Liverpool fanbase). 사실상(virtually) 모든 팬들이 망연자실하였으며 적지 않은 혼란(not a little distraught)을 초래했다. 팬들은 이스탄불의 환호성 직후에 어떻게 이런 상황이 오게 되었는지, 상징적인 인물을 잃는 것이 클럽이 나아가는 방향과 관련하여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혼란에 빠진 것은 팬들만이 아니었다(They weren't the only ones in turmoil however). 제라드도 전체 커리어 동안 머물 것이라 예상했던 팀을 떠난다는 현실이 직접 와닿기 시작했고, 불안 발작을 진정시키기 위해 리버풀 팀 닥터가 방문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완화되고 나서 그는 가족, 친한 친구들과 무슨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긴 토론을 시작했다. 겨우 6주 전에 유럽 축구 정상으로 훌륭하게 이끌었던 클럽에게서 느낀 부족함에 대응하면서 그가 떠나면 서포터, 그의 지인들과 자신에게 생길 갈등에 상처 입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만과 비스칸은 이스탄불 이후 재빠르게 새로운 계약을 제안받았지만 제라드의 눈에는 클럽이 가장 최고의 선수를 붙잡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의 불안은 변화하는 축구 환경에 따라 더욱 가중되었다.

 

맨왼쪽에 콧수염이 당시 구단주인 데이비드 무어스, 그 옆에 있는 빨간 넥타이가 릭 패리 단장



그렇다. 리버풀은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아브라모비치의 첼시를 어떻게든 이겼지만 클럽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부유한 새로운 구단주를 만난 런던 클럽 같은 재정적으로 최고 수준이 아닌(not in the same financial stratosphere) 데이비드 무어스 체제 아래에 있었다.

러시안 구단주는 축구에 진출한 최초의 정치인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 같았고, 이번 기회에 유럽 축구 정상을 향해 한계에 도전하는 리버풀의 엄청난 노력이 밝은 새 시대를 위한 시작인지 옛 제왕의 죽어가는 발악(the dying twitch of an old empire)인지 궁금한 것은 제라드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혁신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무리뉴와 일한다는 것은 베니테즈와의 약간 어색한 비즈니스 관계를 감안할 때 굉장히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전 '호세 무리뉴를 위해 뛰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라드는 후에 자서전에서 그 사실을 인정했다.

 



"호세 아래에서 제가 갈망했던 모든 트로피를 얻을 거라고 확신했었어요. 첼시보다도 호세 무리뉴가 제 마음을 돌렸어요. 저에게서 더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성공을 가져다 줄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결정은 단순한 선택으로 귀결되었어요(The decision boiled down to a simple choice). 첼시에서 트로피를 얻고 싶은지 아니면 리버풀에 충성을 다할지."

제라드의 아버지와 형과의 진심 어린 대화에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평생을 사랑해온 클럽과 축구 경기에서 가장 큰 상을 손에 넣었지만, 다른 곳에서 얼마나 많이 얻든 리버풀에서 얻은 것만큼의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침착했어요. 아버지는 말을 하기 전에 제 감정을 먼저 이야기하도록 해줬습니다." 제라드의 자서전에 수록된 내용이다.

"전 아버지와 폴(제라드의 형)에게 클럽이 제가 원하는 사랑을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전 클럽이 했어야 하는 만큼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첼시는 저에 대해 굉장히 진지했고 무리뉴라는 요인이 제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했어요. 무리뉴가 제 마음을 돌렸고 전 그를 위해 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모든 게 명확해지자 전 다시 리버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첼시보다 리버풀에 대해 더 많이 말했죠."

 



"거의 떠날 뻔했지만 아버지와 폴과의 시간이 모든 걸 바꿔놨습니다. '너에게 최선이 뭐야? 뭘 원해? 콥(Kop: 리버풀 팬)들이 등을 돌리는 걸 견딜 수 있어? 다시는 리버풀을 위해 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 돈과 관련되지 않은, 이런 질문들을 아버지 방 안에서 조목조목 따져봤어요. 첼시로 간다면 수백만 파운드를 벌 수 있을 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돈은 상관없었어요. 리버풀에서 2~3개의 트로피를 얻는 것이 첼시에서 그 2~3배를 얻는 것보다 더 큰 의미인지 생각해봤을 때, 첼시에 대해 확신이 없었어요(I was far from convinced about Chelsea). 오직 리버풀만 생각했죠."

스티븐 제라드의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날, 그가 자서전에 언급한 것처럼 밤 11시경 그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바꿨다고 안필드에 계속 남고 싶다는 의사를 클럽에 전달해달라고 함으로써 결론이 났고, 재계약에서 이적 요청에 대한 조항을 삭제하면서 그 이상의 헌신을 보였다.

다음날 아침 8시 직후, 리버풀의 관점으로 볼 때 훨씬 더 고무적인 두 번째 폭탄발언이 이 발전하는 연속극에 매료된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이에 안도한 패리는 제라드의 충격적인 유턴 소식을 전하며, "스티브는 남기로 결정했어요. 작년과 좀 비슷하지만 더 드라마틱하네요. 그는 언어를 사용해서 우리에게 떠나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떠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죠. 그는 지난 24시간 동안 다시 생각해본 결과, 남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많은 통화가 있었어요.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가 줄곧 원했던 거였어요."

"제가 스티비의 마음을 잘못 읽은 게 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이스탄불에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 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분명히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자신을 붙잡는데 클럽이 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불안해했어요. 계약에 그가 우리 쪽의 열정 부족이라고 여길 만한 문제가 한두 가지 있었지만, 실제는 전혀 아닙니다(There were one or two issues with the contract which he took to mean a lack of enthusiasm on our part, which it wasn't). 지금은 그도 이해하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해왔고, 지금은 모든 게 정리되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리버풀 현대사에서 가장 떠들썩했던 주중 한 주는 금요일에 제라드가 같은 리버풀 출신 동료인 제이미 캐러거의 2년 연장 계약과 함께 새로운 5년 계약을 체결하며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전 단지 제가 사랑하는 클럽을 떠날 수 없었어요." 당시 제라드가 인정했다.

 



"모든 걸 고려했을 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전 떠나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코너에 몰린 것 같았고 그걸 밀어내야 한단 생각뿐이었어요. 제가 가고 싶어 한 것처럼 보였다는 거 알아요. 그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더 생각해보니 남고 싶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 실수를 인정해요. 마찬가지로 클럽도 실수했단 걸 인정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해결했고 지금 리버풀에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많은 걸 배웠어요. 무엇보다 리버풀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저라는 걸, 여기서 우승하는 것이 다른 곳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다는 걸요."

라파 베니테즈 또한 사건의 전환에 크게 기뻐했다. 제라드가 후에 그의 안도감의 깊이를 설명하면서 꽤 냉정했다고 묘사한 남자로부터 코멘트를 받았다. "제가 4~5년 후에 계약을 갱신하고 스티비가 저의 다음 코치나 부감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제 후임 감독이 될지도 모르죠. 그가 원하면 수석 스카우트 자리를 줄 수도 있어요."

스타 미드필더의 잔류 가치는 그다음 시즌 카디프에서 열린 웨스트햄과의 경기, 또 다른 초인간적 제라드컵(FA컵) 결승전 활약으로 감독과 클럽에 다시금 입증되었다. 1어시스트 2골. 후반 추가시간에 벼락같은 30야드 동점골로 연장전을 이어갔고(The second a barely-believable last minute 30-yard thunderbolt equaliser to force extra time), 승부차기에서 겁 없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FA컵을 7번째이자 가장 최근에 안필드로 가져오게 되었다.

그것이 이후 9년 간 이어진 제라드의 커리어에서 끝에서 두 번째 트로피였다.

 

나중에 리버풀 자선경기에서 만나게 된 페르난도 토레스와 루이스 수아레즈. 너희 둘이 같이 뛰었다면......



이후 리버풀은 스페인 공격수 페르난도 토레스, 그리고 다음은 또 다른 월드 클래스 공격수인 루이스 수아레즈와 함께 굉장한 시즌을 보냈지만, 2005년 여름 제라드의 드라마틱한 반전을 겪고 18개월 후 리버풀은 잘못된 판단으로 해외 소유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톰 힉스와 조지 질레트의 파괴적인 오너십은 그의 처음 두 시즌 동안 따낸 2개의 트로피를 기반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과 08/09 시즌 진정한 우승 경쟁에 도달하기도 했던 베니테즈에게 있어 치명적이었다.

그 뒤 팬웨이 스포츠 그룹이라는 새로운 구단주와 함께 클럽이 안정되기 시작해 2012년 케니 달글리시 체제 하에 따낸 리그컵이 제라드가 리버풀에서 들어 올린 마지막 트로피였다. 2005년에 그가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분명 훨씬 더 많은 메달로 선수생활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오랜 적이자 추종자이면서 후에 인터밀란과 레알 마드리드 감독일 때도 그를 영입하려고 했던 호세 무리뉴의 말처럼, 리버풀에서 결코 지금처럼 사랑받고 존경받지 못했을 것이며(He would never have been loved and revered in Liverpool the way he is) 그것은 제라드의 남은 삶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2015년 제라드가 안필드를 떠날 때, 무리뉴는 그에 어울리는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는 리버풀과 프리미어 리그에 있어 역사적인 선수예요. 항상 존경하고 감탄스러운 적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적 중 하나였어요. 첼시에 있을 때 그를 영입하기 위해 모든 걸 다했고, 거의 도달했었어요.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우리 같은 최정상에 합류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저에게 개인적으로 첼시에 오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요. 그는 항상 리버풀이었고, 저도 그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 출처 : 리버풀에코(https://www.liverpoolecho.co.uk/sport/football/football-news/steven-gerrard-jose-mourinho-liverpool-20939102) -